송영춘목사님의 로뎀나무칼럼(2020.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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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효정 작성일20-06-21 12:59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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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총량의 법칙’ 그 진실
인생 총량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고 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생 쓸 타고난 자기 몫이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일생을 통해 쓸 수 있는 희로애락,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의 감정을 이루게 하는 모든 요건, 요인들의 총량이 태어날 때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시적에 부유하고 여유 있게, 그래서 흔히 말하는 금수저의 삶을 살은 사람은 노년에는 더 이상 쓸 것의 여유가 없기 때문에 어렵고 빈곤한 삶을 살 것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소시적에 어렵게 어렵게 그래서 소위 흙수저의 삶을 살은 사람은 쓸 수 있는 여유가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노년에는 부유하고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에 ‘인생총량의 법칙’이 사실이라면 그 또한 좋을 것 같다 그래야 인생이 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정말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남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봤다. 가능한 한 내게 유리하게 계산 해 봤다. 지금 내 나이에 내 인생 소시적을 이십대까지로 한다면 너무 절망적이다. 이미 다 써버린 것도 있는 것 같다. 결과가 너무 절망적이라 계산에 검산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후하게 덤까지 줘봤지만 결과는 역시 절망적이다.
내 아버지가 내 인생 소시적에 내게 하신 말이 있다. “아버지가 생각하기에 너는 지금 죽어도 원이 없을 것 같아… 이 것, 저 것 다해봤으니 말이다. 그래도 마약하고, 도박은 안 했으니 그건 참 고맙다…” 내 아버지 말 그대로라면 마약과 도박을 빼고는 다 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원 없이 다 해봤으니 바랄 것이 뭐가 있겠냐는 의미일 것이다.
역시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절망, 그리고 후회,,,,,
순간 벼락처럼 뇌리를 파고드는 생각이 있다. ‘예수 믿기를 잘했구나’
‘인생총량의 법칙’이 있다면 그 것이야 말로 인생의 한계, 인간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다. 평생을 쓸 모든 것의 총량이 정해져 있으니 그것이 한계인 것이다.
예수 믿어 한계를 극복하는데, 그래서 가장 무서운 ‘죽음의 한계’도 극복하는데 ‘인생 총량’의 한계 쯤이야 뭐가 무섭겠는가…
이제부터 진짜 의지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내게 있던 것 다 써버렸으니 주님께 얻어 쓸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주님 자알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 말씀 좀 잘해주십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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