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춘목사님의 로뎀나무칼럼(2019.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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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tewardship 작성일19-06-15 21:1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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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영춘목사님의 로뎀나무칼럼(2019.6.16) 

 

 

입 장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다. 쉽게 말하면 상대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하라는 말이다.

맹자의 이루편(離婁編)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側皆然)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방송에서 좋은 일을 행한 사람들의 미담을 들을 기회가 있다. 그때 어떻게 그렇게 행동할 생각을 하셨습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 상황을 보니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누구라도 그때, 그 자리에 있었으면 그렇게 행동했을 겁니다.”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다. 바로 역지즉개연의 뜻이다.

인익기익(人溺己溺)이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생각하라는 뜻의 말이다. 상대가 아프면 내가 아픈 것으로

생각하고, 상대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으면 내가 그 어려움에 처한 것으로 생각하라는 뜻의 말이다. 더 나아가서 그것이 자신의

잘못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 말의 어원이라고 한다.

역지즉개연과 인익기익의 뜻이 혼합되어서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헤아려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의 역지사지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말한다.

 

참 좋은 의미의 말들이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인도적으로 흠잡을 곳 없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들은 작은 함정이 있다. 무엇이냐 하면, ‘상대라는 존재가 없을 때에는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또한 상대가 자신과 같은 처지와 입장일 때의 지침은 없다. 또한 상대에 따라서 자신의 입장을 달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상대성이라 한다.

 

나는 내가 믿는 신의 가르침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절대적이라는 것은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최고의 가치는 여러 개 중에 단연 으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가치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절대적이라는 것과 최고의 가치라는 것은 유일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바로 절대성이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믿는 믿음에 대해, 패쇄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포스트모던 시대에 시대착오적인 아집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의 흐름과 대세에 따라 적절하게 변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생각한다.

역지사지는 상대의 처지를 헤아려 생각한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헤아리는 주체는 누구이고, 생각하는 주체는 또한 누구인가??

아무리 상대를 안다해도, 그래서 이해한다해도 역시 상대성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상대에

따라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믿는 신은 욕심스럽게도 온 힘을 다해 나만 사랑하라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하듯 상대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자신에 대한 절대적 가치를 가르치고 상대에 대한 절대적 가치를 가르친다. 왠지 좀 더 합리적인 것 같다.

 

상대성은 변화할 수 있다. 그러나 절대성은 전혀 변할 수 없다. 그래서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믿는 신은 또 내게 가르친다
. “상대를 이해하는 것도, 상대의 입장이 되어주는 것도, 자아라는 필터를 거치면 오류가 있다. 그러니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의 입장이 되려 하지 말고, 단지 그가 원하는 것을 해줘라 이것이 상대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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