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춘목사님의 로뎀나무칼럼(2019.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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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tewardship 작성일19-05-18 23:58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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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춘목사님의 로뎀나무칼럼(2019.5.19)
요, 이 삼일 전부터 Joan Baez의 노래에 꼽혀있다. 듣고 또 듣는다.
특히 ‘Donna Donna’는 질리지가 않는다. 지금 내가 제비의 날개를 갈망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마치 이 노래를 즐겨 듣던 20대로 돌아가려 발버둥 치듯 듣고, 또 듣고, 물리게 듣는다.
어제는 블루투스에 연결된 car audio로 귀가 멍멍할 정도로 들었다.
크게 들어야 맛이 나는 노래도 아닌데 말이다. 발버둥이 아니라. 몸부림, 광기인 것 같다.
아픔의 기억은 아련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픔에는 향수가 있다.
뿌리치는 손끝에 붙잡히려는 미련 같은 것이 있다.
돌아갈 수 없는데 가야만 할 것 같은 회귀의 본능이 감춰져있다.
아픔의 기억은 가슴을 두근거린 부끄러움이 있다. 식어버린 찻잔이 있다.
찾아 헤맨 끝의 이미 변해버린 허무함이 있다. 빛 바랜 사진 속 옷 같은 유치함이 있다.
현실 속에서의 어색한 웃음이 있다.
블루투스 오디오에서는 ‘Tom Jones의 Green Green Grass of Home’의 Baez 버전이 흐른다.
이틀 전 어머니의 유난히 푸르고 굵은 야윈 손등의 핏줄을 보았다.
한 뼘도 안 되는 팔뚝을 잡았다. 넘어져 멍든 이제는 색도 변색된 광대를 봤다. 반응 늦은 동공이 보인다..
아픔은 향수가 있는데, 아파야 할 것은 두려움이 있다. 얼마나 클지 가름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가슴에 품을 수 있는 크기라면 견뎌는 보겠건만 넘칠까 두려운 것이다.
Baez의 The River In The Pines의 노래가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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