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춘목사님의 로뎀나무칼럼(2020.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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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형종 목사 작성일20-03-22 12:42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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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첫사랑은 있었을까? 사랑이란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으니까, 분명히 사랑은 해봤을 것이고, 그렇다면 첫사랑은 분명히 있을 텐데 언제였을까? 가물가물하다, 아니 기억이 없다. 너무 오래 전의 일이기 때문일까?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닌 것 같은데 전혀 그 이름이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누구였더라???
한참을 생각하다 문득 내리치는 깨달음이 있다. 이런! 어이없게도 첫사랑의 이름이,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첫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누가 첫사랑인지 마음에 새겨두지 않아서이다. 이런.. 바보…
지나는 길가에서 우연히 첫사랑을 닮은 사람이라도 스칠라치면 ‘혹시’하는 생각에 아직도 마음이 설렐 때가 있다. 주책이다 싶어 누가 알아차렸을까 주위를 둘러본다. 아내와 눈이 마주치고 내 속내를 들켰을 것 같아도 두려움은 없다. 까짓것 내 아내는 두렵지 않다. 오히려 주위에 ‘혹시 교회 성도가 있다면’ 하는 생각이 더 두렵다. 당연히 그 자리에 없을 텐데. 그리고 있다 하더라도 내 속내를 알아차렸을 리 만무할 텐데. (아니 알면 또 어떠랴!) 뻔하면서도, 이상하게 내 소종한 첫사랑의 추억의 설렘은 아내에게 두려움을 가져야 하는데 성도가 더 두려운 것이다. 왜일까? 무슨 조화일까?
언제나 도도한 자태의 백조의 물 위의 모습만을 원하는 것 같다. 물 밑의 격렬한 발버둥과 치열한 몸부림은 없는 것이 좋다 하는 것 같다. 언제나 인자한 웃음과 약간 낮은 바리톤의 음색이었으면 좋은 것 같다. 아파도 내색하지 않음을 원하는 것 같다. 슬플 때도 성스러운 이유였으면 하고 원하는 것 같다. 궁해도 인색하지 않고 사방이 막혀있어도 옹졸하지 않아야 하는 것 같다. 원색은 사치스럽고 유채색은 촌스러워 하는 것 같다. 다가가면 부담스럽고 물러나면 무심하다 하는 것 같다. 사람과 하나님의 중간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것이 조화인 것 같다.
주님! 앞만 보고 달릴 때 누군가 함께 달려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참을 달리다 기대하고 돌아 봤을 때 먼 발치서 보고 있다면 얼마나 외롭던지요…
주님! “고민하여 죽게 생겼다고”털어놓으시던 겟세마네에서처럼, 저도 고민하여 죽게 생겼을 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한 명쯤 있었음 좋겠습니다. 가슴에 쌓여 터질 것 같으니까요…
주님! 골고다 가실 때 ‘구레네 사람 시몬’이 잠깐, 잠깐 아주 잠깐 십자가 함께 졌던 것처럼, 저도 가끔은 함께 무거운 짐 져줄 사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끈히 감당하고 싶으니까요…
“그러면 저도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아니 이 말은… 그 때 가 보고 다시 말하겠습니다.
170709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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