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7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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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12-07 15:46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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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장17절-24절 ‘하나님을 경외함에 대한 진리’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막 13:13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믿음을 지키고 끝날까지 인내해야 한다는 명령이다.
20절의 말씀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으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섰다는 것은 구원의 언약의 나무에 계속해서 붙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즉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
그리스도의 삶에서 마지막 날까지 믿음을 지켜 가기 위해서는 두려움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1절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믿음을 잃고 불신앙이 되고, 생명과 소망을 위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떠나게 된다면 우리도 꺾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빌2:12b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두려움으로 믿음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22절”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지속적인 믿음은 구원의 날까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믿음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두려움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두려움을 갖기 위해 봐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봐야 한다. 즉 하나님의 긍휼과 진노를 봐야 한다.
하나님의 부드러움과 강함을 봐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봐야 한다.
하나님의 인정과 반대를 봐야 한다. 그렇다면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무엇인가에 주목을 시킬 때, 그리고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일깨워 생각하게 할 때 쓰는 말이다.
2절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기 위해서는 어디를 주목해야 할까?
시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준엄하심과 인자하심의 영광을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성경을 보면서 알 수 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보는 것으로 형성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바라본다면 우리의 믿음은 계속 강건하게 성장한다.
하나님의 준엄하심은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오히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기대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20절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두려움은 구원받은 자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두려움은 믿는 자들의 삶에서 믿음을 유지하고 마지막까지 인내하도록 도와준다.
하나님의 준엄하심에 대한 두려움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향해 달려가게 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향해 달려가고 기댈 때 두려움이 사라지게 된다.
완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는 것과 같다.
요일4:18”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은 신앙인의 믿음을 유지하고 강건하게 할 수 있도록 신앙인의 삶에 지속적으로 좋은 영향력을 미친다.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게 하는 것이다.
두려움은 하나님의 인자하심 안에서 우리의 믿음의 기쁨을 더욱 깊고 진지하게 해주고, 하찮은 것이 되지 않게 도와준다.
두려움은 단순한 도덕이나 인간관계, 형식적인 교리나 전통이나 형식주에서 벗어나게 한다.
영혼을 깨뜨리려는 지옥의 영향력으로 인간의 영혼에 두려움이 덮칠 때 오히려 믿음의 깊이가 더해질 수 있다.
자기성찰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왜 예수를 위해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자문자답을 할 수 있다.
두려움은 하나님의 준엄하심이 피상적인 것이 아니고, 하찮은 것이 아니며 실제하시는 하나님의 참 성품인 것을 인정하게 한다.
두려움은 믿음 안에서 오히려 안식을 줄 수 있다. 하나님의 준엄함에 대한 두려움은 믿음 안에서 오히려 평안을 줄 수 있다.
사11:3”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험을 갖게 되었을 때 ‘영적 기쁨과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에서 하나님의 정죄가 사라질 때 겸손과 떨림, 기쁨이 함께 하는 두려움과 경이로움이 남게 된다.
정죄함 없이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자 친구라는 사실을 알아갈 때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에는 역설적이게도 깊은 안도와 환희가 남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주의 이름을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는도다.”라는 표현을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함께 준엄하심을 바라보자.
자연에서 찾으려 애쓰고 성경에서 배우도록 애써야 한다.
우리의 정죄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라졌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준엄하심이 우리를 떨리게 하자.
그리고 그 안에서 정제된 참 기쁨과 즐거움으로 우리의 삶을 채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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