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3월 13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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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2-03-15 16:5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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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222-32절 제목 : 나의 증거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또한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만드신 이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셨다. (1:26) 여기에는 권위, 권세, 혜택등 모든 것을 포함한다.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람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완벽하게 누리고 다스리게 하셨다.(1:28) 하나님이 사람을 살게 하신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심어야만 하실 정도로 완벽한 위임이었다. 사람이 해서는 안될 것이 하나라도 있어야 할 정도로 나머지에 대해서는 다 하나님과 같다는 이야기이다. 너무나 완벽하게 하나님과 닮았기에 스스로가 생각하기를 내가 하나님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이 죄이다. 인간의 죄는 하나님과 닮은 자신을 보며 내가 하나님이다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본문의 기사는 야곱에 대한 기사이다. 야곱은 1)자신이 원하는 것은 어떤 수를 쓰더라도 반드시 손에 넣는 사람이었다.(25:31-33) (26 :5-29) (30:37-39) 2)오로지 물질에 눈이 어두운 야곱이다.하나님의 축복(28:13-15) 물질의 축복으로만 생각하는 야곱이었다.(28:20) 3)야곱은 상당히 세상적인 세속의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세상의 물리적인 힘에 좌절하고, 굴복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31:2) (32:7) (32:20) 오늘 이 시간에 우리에게 이 사건이 새롭게 조명하는 교훈은 무엇일까? 1) 축복을 생각해보자. 야곱은 장자의 명분도 받았고, 이삭이 장자에게 주는 축복을 받았다. 그리고 28장에서 하나님의 약속한 복을 받은 사람이다. 2814-15, 26b의 말씀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야곱이 생각하는 복이 물질의 복에서 영적인 복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 25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 할 때 어긋났더라 자신과 씨름을 하는 상대가 신적인 존재라는 것(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그 때부터 야곱은 재물의 복이 아닌 전혀 다른 차원의 복을 달라고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것이다. 눈 앞에 다가오는 에서로부터의 죽음의 공포로 인해, 극한의 상태에서 깨달은 것이다. 세상에는 재물의 복이 아닌 다른 복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5:3”심령이 가난한 자,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2)이름 :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으로는 원래 가지고 있는 이름의 의미가 좋지 않아서 하나님이 바꾸시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다. 하나님이 이름을 바꾸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성별 하셨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쓰시기로 작정하셨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거룩케하셔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의미인 것이다. 2:19-20 아담이 하나님으로부터 피조물들을 다스리도록 위임 받을 때에도 하나님이 아담에게 피조물들의 이름을 짓게 하신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야곱에게 하나님이 이름을 바꾸어 주셨다는 것은 야곱에게 새로운 인격과 계획이 제공되었다는 의미이다. 3)새로운 야곱 30-31이 광경을 상상해보라 밤을 새워 씨름하고 지친 야곱의 모습이다. 죽기 살기로 씨름한 야곱이다. 거의 만신창이가 되어 지칠대로 지친 야곱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 씨름의 결과 환도뼈가 위골 되는 불구의 몸이 된 야곱의 모습이다. 해가 돋는 얍복강가의 야곱의 모습이다. 그러나 야곱의 고백을 보면 전혀 우리가 상상하는 패배자의 모습이 아니다.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28의 하나님의 고백처럼 네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이긴자라는 당당함을 엿 볼 수 있는 얍복강가의 해돋는 아침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절름발이 이스라엘의 모습이다. 4)오늘 날까지 그 약속을 믿는다. 32 왜 먹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것과 궁국적인 승리의 약속과 그때 야곱이 하나님께 얻어낸 축복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늘 그 사건을 상기함에 있어서 이스라엘에게 승리의 증거가 되었던 허벅지 관절의 위골 만큼 기억하기 좋은 증거는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많은 증거가 있다.

그 중에서도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이고 죄 사면의 증거이고 부활의 증거이다.우리는 일상을 통해 무엇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기억하려고 노력하는가? 우선 우리의 노력으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을 만들자. 영적인 복,,,을 갈구하자. 갈급할 정도로 하나님의 소유가 되자. 이름을 바꿀 정도로. 하나님과 대면하여 은혜를 아는 자자신이 가지고 있는 증거를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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