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8.4) 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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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tewardship 작성일19-08-11 21:1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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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다니엘 3장 5-12절

제목 : 곤조 (根性)

 

 

정약용의 외사촌 윤지총(세례명:바오로)1784년 김범우로부터 천주교 서적을 빌려보았고, 3년뒤 정약용 형제로부터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1791년 어머니 권씨의 상을 당했지만 교리를 지키기 위해 제사를 지키지 않고 신주를 불살랐다. 이 사실은 곧 친척과 유림에 알려졌고 끝내 관가에 체포되었다. 이 사건을 산해박해 또는 진산사건이라 한다. 제사는 결국 귀신에게 하는 행위이며, 우상, 즉 내가 만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대상은 하나님 한 분이어야 하지 않은가? 본문의 다니엘을 통해 신앙을 갖는 마음가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먼저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신상에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갈대아 사람들에게 참소 당하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3:17-18). 그들을 아꼈던 느부갓네살은 다시 회유를 하지만(3: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은 3:17-18과 같이 말한다. 이는 사실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말이다. 결국 느부갓네살은 분에 차 맹렬히 타는 풀무불 속에 이들을 던지라고 명하고, 그 불이 얼마나 뜨거우면 이들을 풀무불에 던지던 사람들 마저 불에 탈 정도라고 기록되어있다. 하지만 이들은 물론 입고 있던 옷의 색조차도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 존귀한 자로서 대우를 받게 된다(3:30). 심지어 느부갓네살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우상을 섬기지 않고 단호하게 하나님만을 섬김으로서 온 바벨론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앞의 세친구가 제사 즉, 우상에 대한 교훈이라면 다니엘은 기도와 믿음의 교훈이다. 다리오 왕 때 다니엘을 시기하던 사람들이 그를 넘어뜨릴 괴략을 꾸민다(6:7). 그리고 왕의 칙령이 내려졌다(6:9). 하지만 다니엘은 이 칙령을 어길 시 사자굴에 던져질 것을 알고도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했다(6:10). 결국 다니엘은 사자굴에 하룻동안 던져졌지만,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6:23). 그리고 다리오도 느부갓네살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경외할 것을 백성에 선포한다(6:26-27). 오로지 하나님께만 기도하는 다니엘의 모습을 통해 또 한번의 표적, 스스로가 우상인 이방 왕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의 행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 것이다.

 

이 두가지 교훈을 들었을 때 어떤 마음이 생기는가? 첫째로 우상을 섬기지 않겠다는 세 사람의 죽음을 각오한 결단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알려졌고, 둘째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구하겠다는 다니엘의 의지를 통해 역시 하나님의 영광이 이방의 왕을 통해 고백되었다. 신앙은 하나님께는 yes, 세상을 향하여는 no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니, 주님으로부터 말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얻는 것이다. 신앙은 의리로 하는 것이다.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만은 확실하기 때문에 의리로라도 주님을 따라야 하지 않은가? 신앙은 마약과 같다. 주님의 은혜를 맛 본 사람은 절대 이 은혜를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정의를 더하자면, 신앙을 곤조있게 하자. 곤조는 일본에서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말로, 절대지지 않을 사람, 굶지 않을 사람, 어디서든지 일어설 수 있는 사람, 살아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을 말할 때 이 단어를 쓴다. 점점 세속화 되어가는 교회에서, 타락해 가는 세상에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처럼, 다니엘처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다른 신을 섬기지도, 절하지도 않겠다는 근성의 신앙생활을 하자. 그랬을 때 세상 사람들이 나를 보고 세상에 굴복하지 아니한 참 신앙인을 구원하신 주님을 두려워하고 인정하게 하자(3:28, 6: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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