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7월 14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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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7-29 10:14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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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8장35절-39절
‘진정한 승리?’
기독교는 소망을 품는 종교이다.
(품는다는 것은 마음에 어떤 것에 대한 확신이 생겨났다는 것이고 그 것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희망 사항을 소망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소망은 이루어 질 것이라는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그 근거를 신뢰하기 때문에 그 때를 기다릴 수 있도록 간직하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소망은 기대와 갈망이 아니다.소망은 믿음과 신뢰이다.
35절”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인으로서 우리의 소망은 이 땅에서 편안하고 안락하고 안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만족할 수 있는 것이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어떤 위험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능히 극복해낼 수 있는 것이다.
소망은 우리가 어떤 상황과 위협 앞에서도 철저하게 보호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다는 것이다.
(즉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
그렇다면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1.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다는 것이 그 근거이다.(32절)
기독교의 소망은 우리가 수많은 위험에서 도피할 수 있다는데 있지 않고 수많은 위험을 겪을지라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에 있다.
2.우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이다. 모든 사람과 사건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이다.
*환난: 그리스도인들은 다양한 문제와 눌림을 겪을 것이다.
*곤고: 모든 종류의 위험과 위협, 그리고 걱정으로 야기되는 스트레스.
*박해: 복음의 대적들이 가하는 적극적인 반대 상황을 만난다.
*기근: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특별히 식량이 공급되는 것은 아니다.
주님은 아버지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시기 때문에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마실지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배고프거나 굶주리지 않을 것라는 의미가 아니다.
주님의 의를 행하고 주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음식이 늘 공급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모든 불행을 이겨낸다.
38절-39절의 말씀이다. 모든 위험의 고비마다(죽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이 승리한다.
이 소망이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이유이다.
이 것은 영웅심에서 나오는 결과가 아니다.
용기 있는 자기 확신의 결과도 아니다.
이 것을 하나님의 사랑이 이긴다고 믿는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다.
우리가 의를 위해 모든 위험을 감수할 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붙들고 계신다는 믿음이다.
로마서37절에서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는 의미는 그 어떤 상황과 위협과 공격이 있다고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7가지 위험 요소가 그리스도인을 공격했을 때 결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졌다면 그 결과는 참패이다.
그러나 세상의 그 어떤 상황과 위협과 공격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랑이 끊어지지 않는다면 이 것을 승리인 것이다.
넉넉히 이긴다는 것은 기근이나 칼과 싸울 때 넉넉히 이긴자는 적을 자신의 지배하에 둔다고 할 수 있다.
그냥 이긴자는 적들의 목표를 무력화시키지만 ‘넉넉히 이긴 자’는 적들을 자신의 목표대로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긴자는 적을 쓰러뜨리지만 넉넉히 이긴 자는 적들을 자신의 종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고후4:17”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바울의 적이 이제는 종이 되었다는 것.. 바울은 적을 이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
넉넉히 이긴 것이다. 환난이라는 검이 있다면 그 검이 환난을 통해 바울의 목을 자른 것이 아니라.
환난을 통해 바울은 즉 환난의 검을 통해 바울은 자신의 불신과 세상적인 마음을 모조리 잘라내버린 것이다.
환난을 통해 바울은 신실함과 겸손과 사랑의 종이 된 것이다.
환난을 이용해 더욱더 빛나는 영광을 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일은 옳은 일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다윗이 고백한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고 외치는 것을 옳은 일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죽으면 죽으리이다.”는 에스더의 고백은 옳은 일이다.
불타는 풀무불 앞에서도 ‘이 세상의 신들에게 절하기를 거부하는’ 사다락, 메삭, 아벳느고의 행동이 옳은 일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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