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8월 27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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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9-05 14:32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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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3장27절-31절
‘악의 뿌리’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세상 모든 것에는 감각적으로 알 수 있는 공통적 특징이 있는데 이 특징은 스스로 생겨날 수 없다고 하였다.
누군가 그 특징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특징에는 목적이 있는데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21절 전반절).
자랑이라는 말은 ‘남에게 칭찬 받을 만한 것임을 드러내어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자기 자기자신이 생각하고 판단했을 때 자신의 이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 받을 만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말하는 것….
그런데 여러분 이 자랑이라는 것은 교만이라는 내면의 상태를 밖으로 드러내 놓을 때 나타나는 것이 자랑이다.
그런데 교만은 로마서1:18-3:20절에 의하면 세상의 모든 악과 불행을 야기 시키는 것이 교만이라고 바울을 말한다.
교만의 반대되는 개념의 단어는 ‘온유’이다.(이생의 자랑:요일2:16)
인간은 그 진리 앞에 자기자신을 드러내 놓고 진리가 자신을 다스릴 수 있도록 엎드려야 하는 것..
그러나 인간은 진리 앞에 자신을 드리는 것을 대신해서 오히려 진리를 세상의 피조물 보다 못한 것으로 여기는 것..
이 것이 교만이다.
바로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이 것이 교만의 실체이다.
1:28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자기자신을 높이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 역시 교만이다.
바로 종교적인 사람의 교만이다. (롬2:17)
여러분 자랑은 인간 내면에 깊이 뿌리 박힌 교만의 외적인 모습이다.
모든 죄는 교만으로부터 흘러나온다.
하나님은 교만하고 불의한 죄인들을 대신해서 고통 받고 죽게 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결과
1)우리의 교만과 죄로 인해 훼손된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됐다.
2)예수님이 피 흘리시고 자기자신을 화목제물로 드리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다 받으시고 우리에게는 그 진노가 미치지 못하게 하셨다,
3)죄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 귀한 몸값이 지불된 것이다. 예수 안에 있는 속량이다.
4)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나타나고 입증된 것이다. 이 것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안에서) 행하신 일이다.
그렇다면 구원 계획은 어떻게 인간에게 연결할 수 있을까??
벌써 여러분도 감 잡았을 것이다.
인간이 결코 자랑할 수 없는 방법(수단)으로 이루어 진다.
즉 구원과 관계된 그 어떤 일도 인간은 자랑할 것이 없는 것…(하나님의 의)
만약 인간이 자랑할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완전히 실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원에 있어서 자랑을 배제시킨다는 사실은 칭의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우리에게 임한다는 것.
만약 자랑할 만한 율법의 행위가 있다면 이 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훼손하는 것이다.
칭의는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다고 말하는 바울이다.
만약 율법의 행위가 ‘칭의’를 이루게 한다면 율법이 없는 이방인은 불리하다.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은 이방인의 하나님이 아니시게 되는 것이다.
(창조주의 훼손, 그래서 단어 하나하나가 중요한 것, 함부로 쓸수 없는 것. 인간의 말의 권세)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화목을 이룰 수 있는 방법 역시 단 하나, 즉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여러분 우리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바울이 말하는 율법의 행위라는 것은 ‘복음이 있기 전’에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요구하신 행위이다.
유대인들은 ‘칭의’를 얻기 위해 율법이 요구하는 행위를 해야 하는 줄 알았다.
또한 율법의 행위라는 것은 바울이 말하는 ‘자랑할 것이 없다’는 복음과는 다르게 ‘자랑할 것이 있는’ 의를 얻기 위한 율법의 행위이다.
유대인들은 칭의를 얻기 위해 율법의 행위를 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서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기 위해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자기 자신 의롭게 보이기 위해(인간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어떤 행위를 하고 있다면 바로 교만에 의한 율법의 행위가 되는 것이다.
롬 4:4-5믿음의 실체 믿음은 자기에게 집중하는 대신 의지하는 대상이 베푸는 은혜에 집중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은혜와 일치한다.(믿음은 감사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일은 보수와 일치한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서기 위해 행위를 시도한다면
1)은혜를 무효화하게 된다.
2)칭의를 값없이 주는 선물로 받아들이는 대신 마땅히 받아야 할 임금 정도로 변질시키는 것..
3)구원의 온전한 계획을 통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자랑(교만)을 다시 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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