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7월 30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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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8-11 13:23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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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3장19절-26절
‘다른 어떤 것도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다.’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세상 모든 것에는 감각적으로 알 수 있는 공통적 특징이 있는데 이 특징은 스스로 생겨날 수 없다고 하였다.
누군가 그 특징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특징에는 목적이 있는데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21절 전반절).
죄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는 것으로 ‘죄책’이라는 것이 있다.
죄책은 죄에 대한 경험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모든 인간은 자기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마음의 거북한 부담감을 경험하게 된다.
모든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새겨놓으신 하나님의 법(양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법에 어긋난 행동을 할 때 거북한 부담감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을 때 자신의 마음에 나타나는 거북한 부담감이 바로 ‘죄책’ 또는 ‘양심의 가책’이라고 한다.
죄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이 행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1)지식의(지적) 방법을 동원한다.(이성, 생각)
즉 자신의 도덕성에 대한 기대를 낮추면 낮출수록 죄책도 덜하게 된다.(내가 그렇지 뭐)
자기합리화, 자기타협. 죄책을 해소하기 위해 동원하는 지적방법의 또 다른 한가지는
도덕과 윤리의 기준은 이미 지나간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것…
(최첨단을 살아가는 21세기에서 도덕이 어디 있고, 윤리가 어디있냐??)
(세상이 악해져 간다. 동성애만하더라도 이 것을 가지고 문제는 삼으면 구시대의 사람)
2)육체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약물이다.
마약,,,마약이 유행한다는 것은 죄책으로부터 자유하기 원하는 사람이 많아져 간다는 말과 같다.
tv, 게임에 빠지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스포츠를 과하게 하는 것, 청소등과 같은 것들을 강박에 가깝게 하는 것…자신의 마음을 시각,
청각을 쉴 새 없이 자극하는 것으로 양심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 방법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3)아까도 애기 했듯이 종교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다.(신앙과는 관계가 없는 종교의 방법을 말하는 것)
이 방법은 진리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 있기 때문에 오직 양심의 가책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한 목적이라면 가장 간교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방법은 지적, 육체적 해결 방법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들을 신의 힘을 빌려 해결하게 한다.
이 방법은 죄책, 양심의 가책을 가지게 하는 대상(신)과 직접 해결한다는 측면에서는 강력하고 정확하다.
그렇기 때문에 효과적이다.
이단 종파, 사이비 종교는 이 것을 노리는 것이다.
종교적인 차원에서 거북한 부담감을 줄이는 방법으로는 ‘선행’을 강조하거나 종교의식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어떻게하실까??
여러분 조금 전까지 우리가 함께한 죄책,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자유하기 위한 인위적인 방법들은
머리로는 해결 될 수 있을 수는 있지만 마음으로는 해결 될 수 없다.
다시 말하면(다른 말로) 마음이 치유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여러분 인간이 하나님 앞에 지은 죄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도덕적 행위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오늘 말씀은 5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사람이 없다.(20절을 읽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같은 맥락으로 20절의 말씀은 ‘율법의 행위로는 결코 무죄 선고를 받을 수 없다는 것’
결과적으로는 율법을 통해서는 인간의 죄가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드러날 뿐이라는 것
*하나님은 우리의 무죄를 위해 일하신다.(21-24)
구약의 율법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대한 증거로 많은 약속들을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율법을 주심으로 나타나는 실제 효과는 주로 인간의 죄를 드러내고 정죄하는 것(갈3:21-22)
하나님이 우리가 관심을 갖기를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온 마음을 다해 관심을 갖기를 원하시는 것…
그 일을 위해 우리에게 역사(일)하시는 것이다.(롬8:3)
여기서 우리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인 상태에 있을 때
우리 스스로 죄책을 해결하라고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먼저 주도적으로 계획하시고 일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24절에서 이야기 하는 ‘칭의’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칭의를 위해 그리스도를 앞세우셨다.(24-25)
여러분 죄책을 해결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여러분 인간의 죄책을 해결해야 하는 정확한 이유는 바로 인간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받았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는 영원한 희생제물인 하나님의 아들을 드리는 제사을 드리는 것..
*오직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칭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값을 치루고
우리에게는 값없이 주시는 선물인 칭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칭의를 얻고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값없이 ‘칭의’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이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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