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6.30) 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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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tewardship 작성일19-07-06 20:56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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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누가복음 9장 51-62절
제목 : 나를 따르려면.
2000년 전, 흉악범에게 내리는 최고의 형벌이 십자가의 처형이었는데, 예수님이 당하신 이 처형에는 종교, 정치적 음모가 있었다. 하나님을 모독한 죄가 첫째, 예수라는 청년에 의해 유대 제사장들의 치부가 드러날까 손을 쓰려던 것이 둘째, 예수님이 행하시는 신적 권능에 위기의식을 느낀 것이 마지막 이유이다. 그리고 십자가 죽음의 본질적(영적)인 의미는 인간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죽였다는 것에 있다. 구약시대부터 많은 선지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예언했음에도 유대인들의 손으로 직접 예수님을 못 박은 것을 보며 그들의 어리석음이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우리가 당대에 살았다면 이와 같이 미련했을까? 그때 그 자리로 가보자.
51절을 보면 구원 계획의 날이 무르익어 예수님께서 고난의 길을 가기로 작정하신다. 54절, 사마리아인이 예수님을 거부하자 야고보가 예수님께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라고 말한다. 야고보를 비롯한 제자들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는 하나같이 예수님을 그저 로마의 압제로부터 벗어나 굴복시킬 메시아로만 보고 있었다. 적장 예수님은 다가오는 십자가의 날을 염두에 두고 계신데 말이다. 본문에는 세 사람이 등장하는데 첫 번째 사람이 이와 같이 말한다. “어디로 가시든지 따르리이다(57절).” 앞서 말한 ‘무리’의 관점에 빗대어 보면 장차 올 세상(로마로부터 벗어나는)에서 한자리 차지하려면 예수님께 일찌감치 눈도장을 찍어놓고 싶은 마음에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 두 번째 사람은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59절)”고 하시자, ‘아버지를 장사하게 해 달라’고 한다. 세 번째 사람은 ‘주를 따르기 전에 가족과 작별하게 해 달라’고 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들 모두에게 ‘나를 통해 원하는 것을 해결하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경고하시 듯(58절),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시는 듯(60절), 앞으로만 가고 뒤로는 가지 못하는 쟁기에 빗대어 꾸짖으시 듯(62절)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첫 번째 사람은 인생역전의 방편으로 예수님을 택했고, 두 번째는 예수님의 권유에 아버지의 장례를 핑계 삼았고, 세 번째는 가족과 작별을 핑계 삼았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라는 것이다.
이들이 하나님 나라에 맞지 않았던 이유는 1.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을 쉽게 생각했다. 예수님이 58절에 하신 말씀은 ‘내가 가는 길, 하고자 하는 일은 세상에서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세상에서의 안위를 얻고자 한다면 예수님이 아니더라도 방법은 많다. 우리가 구할 것은 그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 뿐이다(마 6:33). 2. 하나님의 나라와 뜻은 우리를 설득, 납득시키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상황이든 항상 내가 먼저 납득해야 하고, 내 주변으로 공감대가 형성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설득해야지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롬 11:33). 어떤 조건도 충족되지 않아도 된다. 오직 뜻하신바 진행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다만 우리에게 요구하시기를 아멘으로 따르고, 계획에 포함되어 함께 하기를 원하는 작정 뿐이다. 3. 어떤 일에도 우선순위가 있다. 그리고 일의 경중을 날카로운 지혜로 가릴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일을 할 때 처리의 순서를 정해서 하지만 이것은 시간 속에서의 일일뿐이다. 우리에게 가장 강력하고 절대적인 사건은 죽음이다. 당장 눈앞의 죽음을 알게 된다면, 오늘 밤이 마지막 밤이라면 무엇을 먼저 하겠는가? 아마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라면 어떤 부귀영화가 필요할까? 타인의 장례를 치를 여유는 있을까? 잘못 온 길을 되돌아가 다시 시작하려는 생각이 들까?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삶과 죽음의 선택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100세에 아들을 얻자 하나님은 나중이었다. 이에 이삭과의 사이에 하나님이 개입하셨고, 그 결과 아브라함은 믿음, 신뢰, 무엇보다도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얻어 모리아 산을 내려왔다. 이제 주님을 따르기로 작정하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내가 애착을 가지고 의지했던 지식, 물질, 영향력, 주변의 사람들을 끌어안고 가라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은 아무나 얻어 가지는 말씀이 아니다. 택하신 자녀에게만 주어지는 말씀이다. 그리고 이 말씀에 첫 발을 내디딜 때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돕기 시작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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