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3.17) 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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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tewardship 작성일19-03-23 20:38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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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제목 : 마가복음 8장 34-36절(섭리 Ⅴ)
지난주, 예수님을 따르자는 말씀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자세히 나눠보고자 한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에 대해 알았던 바울(행 22:3)도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보잘 것 없었던 자신의 믿음을 금식으로 회개한 후(행 9:9)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다. 이렇듯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본문에서도 특히 34절이 그 해답이다. 1.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에서 ‘누구든지’는 ‘아무라도, 누구라도’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는 자격과 조건의 제약이 없고, 강제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바로 ‘누구라도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으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의 ‘누구라도’는 자격에 대한 말씀으로 ‘자랑하지 말라’는 의미이다(마 3:9). 2. “자기를 부인하고”에서 ‘자기 부인’은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자기 부인은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만, 자기주장 등의 고집을 버리고 주님에 대한 믿음으로 돌리는 것,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막 10:17-21;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냐는 한 부자의 질문에 예수님께선 계명을 지키라고 하셨고, 그는 모두 지켰다고 대답했다. 이에 예수님은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그러자 그 부자는 재물이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주님을 따르기를 포기한다. 주님이 ‘모든 소유를 팔라’고 하신 것은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 자기 부인은 주님의 따르라는 말씀에 재물이 소중하다는 생각, 아깝다는 생각, 그리고 재물에 대한 가치를 버리고 주님의 말씀만을 생각하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자기 부인의 결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순종’이다. 3. “자기 십자가를 지고”의 ‘십자가’는 주님과 우리를 하나로 묶는 매개체이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남아있는 주님의 흔적이자, 주님과의 유일한 공통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는 십자가는 무엇일까. 흔히들 말하는 ‘(남편 혹은 아내, 자녀)가 나의 십자가이다’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만나고 경험할 수밖에 없는 고난을 말하는 것이다. 이때 우리에겐 타협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고통과 고난을 당하더라도 주님을 택할 것인가 하는 선택이 따른다. 주님을 택하는 순간 그것이 어렵고 힘든 길인 줄 알면서도 감내하고 기꺼이 그 길을 가려 할 때 비로소 십자가를 진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이 죽음의 길인 줄 알면서도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처럼. 그런데 한 가지, 우리가 공통적으로 지고 있는 십자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을 믿기 시작했을 때 세상과 단절함으로 얻은 고난이다. 세상과 단절하면 소외 당하고 외로워진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집과 직업을 버리고 따랐고, 바울은 앞서 말했듯이 눈이 멀고 회개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을 갈 2:20의 말씀으로 대신하자. 주님을 따르는 길이 아무리 힘들다 할지라도 그 길에는 결국 끝이 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이 아무리 험하다 할지라도 주님이 앞장서서 가신다. 주님을 따르는 길이 아무리 외롭다 할지라도 주님이 함께 하신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아무리 고통과 고난이 힘들어도 우리는 능히 감당할 수 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 할 일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신 승리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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