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7) 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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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tewardship 작성일19-02-02 13:45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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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창세기 39장 1-6절
제목 :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우리가 오늘 말씀 가운데 사로잡혀서 반드시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신앙이란? ①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셔서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을 믿음 ②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대로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끌어 가심을 믿음 ③하나님은 모든 선의 창시자이시고, 하나님만이 선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다고 믿음 ④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기도를 인정하고 열납하신다고 믿음 ⑤우리의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을 믿는 것이다. 즉, 단순히 신을 믿고 의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신을 자신의 삶에 개입·간섭하시도록 자기 자신을 용납(무장해제) 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인격적인 하나님이란?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인 하나님에 대해 전혀 알 길이 없었는데, 우리에게 당신에 대해 알려주시려고 인간의 기준에 맞추어 스스로를 낮추어 드러내심이다. 나아가 우리 삶에 나타나서 관여·참여하고 인도하시는 것이다.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하시고, 형통하도록 도우셨다(3절). 여기서 ‘형통하게 하심’에는 ‘함께하심’이라는 전제조건이 반드시 깔려야 한다(2절). 즉, 형통은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도우신 결과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형통까지의 과정에는 리스크가 없어야 하고, 결과는 선한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선하신 하나님이 이끄는 형통인데 리스크가 생길 리가 없고, 그 결과가 선하지 않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반드시 형통하게 될까? 반드시 그렇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한 형통은 우리가 생각하는 ‘잘 된다’의 개념과는 다를 수 있다. 본문의 요셉만 봐도 옥살이를 하는 등 여러 수모를 겪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 1. 우리가 생각하는 ‘형통’은 너무도 ‘세속적’이기 때문이다. 창 39:23b”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에 비추어 볼 때, 요셉의 상황은 어떠한가? 옥에 갇힌 신세이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형통이 아닌데, 성경에서는 형통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신앙인이 되었다면 잘 먹고 잘 사는 삶을 형통이라고 여기는 가치관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나를 보시는 관점으로 바뀌어야 한다. 2. 삶은 목적을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형통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세우신 목적으로 가는 길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는 길, 우리가 세운 목적이 아니다. 우리의 인생을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목적과 길에 우리가 참여하는 것이다. 애굽의 총리라는 직책 역시 야곱의 가족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목적 중 여정이었지, 끝이 아니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목적의 끝을 알 수 없지만, 가장 선한 것을 주실 유일한 분이라는 진리를 믿고 그저 따라가야 한다. 진리의 길을 따라갈 때 인격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출 3:12). 3. 우리는 잠시의 틈만으로도 교만해지기 때문이다. 교만은 무엇인가? 흔히 생각하는 ‘잘난 체’보다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교만의 정의에 가깝다. 우리에게 형통만 이어진다면 그 후에는 하나님의 간섭을 귀찮아할 것이다. 4.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우리와 함께하기 원하신다. 전 7:13-14를 보자. 항상 형통하거나 곤고하면 되돌아볼 이유가 없다.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이 모두 있기에 그날을 되돌아보며 그때마다 역사하신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즉, 과거의 순간마다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함께하신 인격의 하나님을 깨닫고 의지하여, 자신의 인생을 섣불리 예측하고 어리석게 포기하지 못하게 하심이다.
우리 인생은 형통과 곤고가 수없이 교차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개입하시면 결과는 언제나 ‘선’일 것이다. 그러므로 살전 5:16-18의 말씀대로 하나님과 동행하여 형통한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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