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2월 22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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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12-29 09:58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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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12:1-2 ‘영적예배’
12장1절의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에게 권하노니”
생각할 수 있는 것은
1-11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셨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삶에 자신의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비’에 자신의 삶의 뿌리를 내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자신의 삶 가운데서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의 권면을 보면(1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새로운 삶이 자비로운 삶(자비를 베푸는삶)이라고 말하기에 앞서 이 것이 예배하는 삶이라고 말한다.
즉 하나님을 향해 예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하는 것.
1절을 보면, 우리는 자비로 사람들에게 자신을 내주기 전에 예배를 통해 자기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단순한 사회적 의무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이는 종교적인 삶에서도 찾을 수 있다.)
즉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배제하게 된다면 우리가 실천하는 자비를 베푸는 삶이라는 것이 단순하게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삶으로 제한된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우리가 행하는 자비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예배의 자리로 이끌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는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선행이 하나님의 가치를 드러내지 않는다면 우리의 행함은 예배가 되지 못하고 결국에는 자비로운 삶도 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자비의 목적이 자기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치를 드러내는 삶이어야 한다.(다른 종교와 다른 것은 ‘하나님 자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자비는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의 자비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고 그리스도를 높이는 삶의 표본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비보다 예배를 먼저 놓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자비로운 삶이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예배하는 삶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행함이 예배가 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비로운 일도 아니다.
자비를 베푸는 삶은 예배하는 삶에 달려 있다.
“영적 예배” :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
영적 예배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구약에서 드리는 예배의 방식이다.
예배자는 하나님께 나오면서 양, 소, 비둘기를 가져와 그것을 제단에서 죽여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야 했다.
죄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고 하나님은 죽임당한 동물을 대속물로 받으시고 예배자에게 용서를 베푸시고 살리시고 화목의 관계를 유지하시는 것..(그러나 대속제물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매번 드리는 것,,,) 그래서 영원한 희생제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더 이상의 제물이 필요없게 된 것이다.
히10:12”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바울은 ‘예배는 우리 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가 죽어서 속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바울이 말하는 영적 예배의 구성 요소들을 알아보자.
1. 몸
요점은 마음이나 생각이나 영혼이 아니라 몸을 하나님께 드린다는데 있지 않다.
2절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함을 받아”
분명한 것은 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몸이 중요하다고 해서 구약의 희생제사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몸을 드리는 것은 예수님의 희생으로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몸을 드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몸으로 벌이는 행함을 드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몸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행동하는 방식 때문이다.
몸을 주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이란 외모의 미가 아니라 사랑의 ‘미’이다. 그리고 희생의 ‘미’이다.
즉 우리몸을 드린다는 것은 우리 몸을 하나님의 자비를 보여주는 도구로서 드린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건강을 생각한다면(무병장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러니 하게도 몸을 위하는 문화가 흥하면 그 국가는 내리막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바로 하나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도구로서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는 의미에서 건강을 생각해야 하는 것.
또한 구약의 예배자가 세상의 제물로서 그 가치를 포기하고 양이나 염소나 황소를 피와 불의 제단에 드렸던 것 처럼 우리도 세상의 가치와 안락함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을 자비를 드러내기 위해 언제라도 세상에서 준비되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2. 산(living)
자비는 가시적으로, 삶으로,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삶의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 몸을 산 제물로 온전히 드리는 것이다.
즉 우리의 삶이 곧 예배의 행위가 되는 것이다.
삶에서 이루어지는 우리 몸의 모든 행위가 예배의 행위가 되게 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살아서 몸으로 하는 모든 행함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보화로 여기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 몸으로 하는 모든 행위로 그리스도를 가장 귀한 분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 몸으로 하는 모든 행위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더럽히는 모든 것을 죽이는 것이다.
3. 거룩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6:13”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여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가 바로 ‘산’ 이다.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는 말씀은 우리의 지체, 몸을 죄가 아닌 의를 행하는데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 몸은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하나님께 드렸으니)
몸은 겉모습 때문이 아니라 행하는 것으로 인해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의를 갈망해야 하는 도구이다.
순종과 자비와 평화의 도구가 되야 하는 것이다.
우리 몸은 의와 자비라는 하나님의 목적으로 쓰일 때 거룩한 예배의 제물이 되는 것이다.
4.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만일 우리가 몸으로 살아가는 삶의 제물이 거룩하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기쁨으로 받으신다는 것이다.
거룩한 산 제물에 하나님을 덧붙였다.
하나님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거룩함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하나님 때문이다.
몸으로 드리는 거룩한 산 제물, 즉 영적 예배가 무엇인지 잘 설명하고 있고 하나님이 그 예배의 중심에 계시다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12장은 자비의 삶을 살라고 요구하기 전에 먼저 예배의 삶을 살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하심 위에 세워진 자비의 삶으로 부르신 목적은 바로 예배의 삶을 살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자비를 베푸는 목적은 하나님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우리에게 몸이 있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드러 내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비로운 행동을 통해 높아지시는 것이다.
빌1:20”나의 간절한 소망을 따라 아무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하나니”
고전6:19b-20”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것이 바로 “너희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의 의미이다.
그리스도의 가치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우리의 몸을 사용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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