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2월 15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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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12-29 09:5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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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12장1절-2절 ‘하나님의 자비에 자신의 삶을…’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기반으로 앞에서 말한 모든 진리가 어떤 그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이제부터 하는 말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앞서 말한 것을 기반으로 한다. 는 의미 또는 이제부터 행동에 옮겨야 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의지표명, 즉 무엇인가에 대한 근거와 기반이 되는 것을 설명하고 심사숙고하고 많은 준비를 한 결과 어떤 결단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바울은 말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 너희를 권하노니”

여러분 이제까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설명을 한 것을 바탕으로 12장-16장까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권면한다.

1장-11장까지의 진리를 기반으로 12장-16장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특정한 방식의 삶을 요구하는 것이다.

1장-11장의 내용이 그렇다면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에 대한 설명이다.

기독교의 핵심인 그리스도인의 삶…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하심 위에 자신의 삶을 세워 가야 한다.

이유는 기독교의 전체 핵심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 역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로마서는 1-11장까지는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드러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설명한다.

그리고 나서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1-11장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기반을 두는 삶을 세워야한다고 설명한다.(살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한다.

자신의 결단에 앞서 ‘그리스도안에 드러난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에’ 나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자녀의 교육 역시 마찬가지이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 것과, 하면 안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모습이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복음 위에, 즉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다스리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영광 위에 세워진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여러분 ‘이 음악은 왜 안되고, 이 영화는 왜 안되고, 이 파티는 왜 안되고, 이 옷은 왜 안되고, 이런 친구는 왜 안되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것을 가르치는 교회, 자유, 희락, 화평이 없다. 오히려 우울하고 침울하다. 죄책감 속에 빠져있고 자기자신을 괴롭힌다.)

내가 무엇을 해야, 무슨 생각을 해야, 무슨 행동을 해야 사람들이 음악이나 영화나 파티나 친구들보다 예수님을 더 존귀한 분으로 보게 할 수 있는지가 문제이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예수님이 그저 인간의 삶을 흥겹게 하고 물질적으로 윤택하게 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게 해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더 잘 사랑하고 더 잘 죽도록 하기 위해 오셨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2:1절의 ‘그러므로’의 의미는 1장-11장이 말하는 진리로 인해 ‘그러므로’ 12장부터 16장에 말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비하심 위에 자신의 삶을 세우는 것’이다.

1-11까지 하나님의 진노와 의와 심판에 대해 오직 믿음으로 얻는 칭의에 대해 우리를 성결하게 하고 지키시기 위해 성령이 오심에 대해 선택한 자들과 이스라엘을 끝까지 신실하게 온전히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해/

그러나 이 모든 것의 절정이자 요약으로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라는 실체를 말한다.(그렇다 자비 외에 무엇을 더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우리를 권면하겠다’고 바울은 말하는 것이다.

 

롬15:8-9”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다 1장-11장의 목적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열방 중에 높이 드러나는 것이다.

 

여러분 기독교의 신비를 아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기반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갈 때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드러나고 증거 된다는 사실을…

그럼 12장에 나타나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기반을 두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를 통해 흘러나올 수 있는 모든 자비하심을 먼저 생각해보자.

8절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9절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13절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14절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15절 “우는 자들과 함께 율라”

16절 “낮은 데 처하며”

17절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19절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20절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 거든 마시게 하라”

이 것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의 세계이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기반을 두게 된다면, 두고 있다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이 같은 자비가 흐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하심 위에 자기자신의 삶을 세우자.

자기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뿌리를 내리자.

자기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기초를 삼아야 한다.

여기서 자비하심이란 죄인을 향한 죄의 용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소망 없고 절망적인 사람들을 향한 따듯한 동정의 마음을 함축하고 있다.

롬5:6-8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였느니라.”

 

이 말씀 중에 자비의 두가지 측면이 나타난다.

연약하고 소망이 없다.

또한 죄인이고 유죄이다.

자비하심은 이 두 가지에 반응하고 해당한다는 것이다.

즉 자비하심으로 죄인을 용서하고, 

자비하심으로 소망 없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것..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감동하고 묵상하고 인정하고 감사하는 삶…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가 없다면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고 자비를 구하는 삶.

9절의 예를 들어보자..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깊이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망치는 것을 미워해야 한다.

자비는 악을 미워하지만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다.(17)

자비는 상처를 받고 공격당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만 보복하지 않는다.(19절)

자비는 원수가 생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만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라”로 말한다.(20절)

자비는 약하지 않다.

자비는 강한 근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무척 부드럽다.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사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하심 위에 자기자신의 삶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하자.

자비하심을 품을 수 있도록 기도하자. 그리고 품자.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삶을 맡기자.

그 자비하심으로 우리 죄가 용서받았음을 받아들이고

그 자비하심으로부터 자기자신 자비를 실천하며 힘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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