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05월 24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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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효정 작성일20-05-31 12:43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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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0 25-37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4년전, ‘너희가 하나가 되면 부흥을 이루게 한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2주 전까지만 해도 하나가 되는 것을 대동단결, 일사불란, 혼연일체 쯤으로 생각하고 기도했다. 그런데 2주 전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교회가, 성도가 하나 되는 방법은 바로 성도가 서로를이웃으로 사랑해주는 것이었다(요일3:24). 이웃을 사랑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서로 사랑하는 자들은 모두 주님 안에 거하는 존재이므로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된다.

오늘은 이웃 사랑 즉 자비에 대해 알아보자. -북이스라엘을 앗시리아가 점령했을 때 그들 사이에서 혼혈이 많이 태어나자 남유다는 그들을 경멸했고, 때문에 당시 이스라엘에는사마리아인의 떡을 먹느니 돼지 고기를 먹겠다는 말이 있었다. 율법을 어기더라도 사마리아인의 도움은 받지 않겠다는 뜻이다-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영생에 대해 질문하고 예수님은 율법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반문하신다(25-26). 그는 신6:5, 19:18의 말씀으로 대답한다(27). 그의 말이 맞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그는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질문을 하는데, ‘이웃이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이 때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이다. -강도를 만난어떤 사람을 우리는 유대인이라고 추측할 뿐 어느 민족의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강도는 죽은 줄 알고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거의 죽게 된 이 사람을 버리고 떠난다. 그 때 그 곳을 종교지도자, 제사장이 지나갔다. 우리는 종교지도자라면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라도 높은 수준의 행동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제사장은 강도 만난 사람을 못 본 체 지나가 버린다. 얼마 뒤 이번에는 제사장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부터 구별된 레위인이 지나가는데 그도 역시 강도 만난 사람을 지나친다. 다음으로는 사마리아인이 등장한다. 앞서 언급했듯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원수처럼 상극의 입장을 취하는 사이이다.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주리라 기대했던 제사장과 레위인, 그리고 등장하면 안 됐을 사마리아인이 모두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성전과 제사의 일을 맡아서 하는, 하나님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제사장과 레위인은 지나가버리고, 우려와는 달리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치료해준다. 심지어는 당시 일주일 정도의 경비로 쓸 수 있는 돈을 주며 모자라면 더 주겠다고 약속한다.

이것이 연극이라면 사마리아인이 주인공이어야 한다. 그의 행동은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의 갈등을 아는 사람이라면 예상도 못할 뿐더러 납득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그의 선행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 비유를 하신 것일까? 제사장과 레위인은 사마리아인을 부각시키기 위한 조연일 뿐일까? 제사장과 레위인은 하나님을 섬겨야 하고, 그들에게는 직무에 따른 그들만의 율법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정결법으로, 일반인에게도 정결법은 있었지만 정결의식이 있었던 반면, 이들의 정결법은 사체를 아예 만질 수 없었다(19:11-13). 만약 제사장과 레위인이 강도 만난 사람을 이미 죽은 줄로 알았다면(30) 외면하는 것은 당연하다 못해 오히려 의무를 충실히 수행했다고도 볼 수 있다(31-32). 다시 말해 단순히 서기관이나 장로를 등장시키지 않고 주검을 피해야 했던 제사장과 레위인을 등장시키신 예수님의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율법교사는 사마리아인이라고 하지 않고자비를 베푼 자라고 대답하고, 예수님은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고 하신다. 즉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사마리아인이 위헙을 무릅쓰고 구해서 치료해주고, 시간과 돈을 써서 끝까지 책임지는 선행을 가르치시려던게 아니라자비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씀하시려던 것이다. 사람이 처해있는 형편과 고난의 크기, 해결 방법은 다 다를 것이다. 굶주린 사람에게는 먹을 것이, 벗은 사람에게는 옷이, 잘 곳이 없는 사람에게는 잘 곳이 필요하다. 먹을 것이 필요한 사람에게 의복을 제공한다면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선한 일이라고 할 수는 있겠으나 당사자에게는 자비로운 일이 아니다. ‘자비는 그 사람에게 그 순간 가장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것이다. 제사장과 레위인이 강도 만난 사람을 목격했을 때 그 사람이 죽은 것으로 알고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영혼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을지 모른다. 그 순간 강도 만난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영혼을 위한 구원보다는 생사 여부를 확인하고 상처를 치료해 의식이 돌아올 때까지 보살펴 주는 것이었다. 7:9-12에서 특히 12절을 보면내가 원하는 것을 받고 싶은 것처럼내가 바라는 것을 받고 싶은 것처럼이웃에게도 이웃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해주는 것이 자비이다. 이웃이란? 자비를 베푸는 자이고,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너희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그리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기 위해 가장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것이 바로 기도이다(5:15). 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의 것과 하늘의 것을 막론하고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가장 실제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웃을 위해 자비를 베풀 때 즉 내 이웃이 원하는 것을 해주려 할 때 어떤 것보다도 가장 현실적인 것이 기도를 해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멘교회가 하나가 되었을때 부흥을 허락하겠다고 하셨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서로 사랑해야 한다. 서로 이웃이 되고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기도해주는 것이다. 내 이웃을 위해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우리가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킨 것으로 인정하실 것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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