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05월 17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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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효정 작성일20-05-24 12:37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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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43절-45절 지혜로운 자가 원수를 만나면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의 교훈은 차치하고 상황만을 생각했을때,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다. 외나무 다리 밑이 개천정도라면 뛰어내리는 등의 방법이 있겠고, 천길 낭떠러지라면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할 수도 있지만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 상황에서 누구의 잘못인지에 따라 원수에게 용서를 구할수도, 용서를 할 수도 있다.
본문에서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44절).” 원수의 유형은 여러가지 있겠지만 내가 그 이름(사람)을 생각하면 부담스럽고 가슴이 요동치며 반응하는 사람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1.주님의 말씀(명령)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네 원수를 사랑해주면 좋겠어’의 당부가 아닌, ‘네 원수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명령이다. 즉 사랑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45절a)” 우리를 만드신 분이 아버지라면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셨기에 아버지이시다. 또한 우리를 아버지로서 사랑하시기에, 우리에게 생명 주시고 지키고 보호하시기에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은 언제나 아버지로서의 자격과 조건을 취하고 계신데, 문제는 자녀 또한 자녀로서의 자격과 조건을 취했는지이다. 이것은 ‘의지’의 문제로, 하나님은 우리가 마귀의 자식으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때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아버지로서의 의지를 먼저 보여주셨다(롬5:10).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셨듯 우리도 그 분의 자녀가 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드리자. 2.내가 원수라고 생각하는 대상 역시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졌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우리의 형제이기 때문이다(45절b). 우리는 나의 원수를 하나님도 원수로 여겨주시기 원하지만, 우리의 원수는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다. 하나님의 원수는 오직 마귀뿐이다. 원수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한 아버지 안에 있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이고, 오히려 마귀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도리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요일3:14). 즉 원수를 사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생명을 얻고, 증오하면 마귀의 자녀로 영원한 죽음을 맞게 된다. 3.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의 증거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믿음의 증거는 사랑 밖에 없다. 사랑의 열매가 무엇인가? (고전13:4-7을 보자). 한마디로 앙심을 품지 않는 것이다. 눅23:34-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못 박고, 선동하고, 조롱하고, 구경하는 모두를 향해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주님의 영으로 감동된 자 스테반 역시 자신의 죽음 앞에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행7:60). 스테반이 주님을 흉내 낸 것인가? 아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그 증거인 사랑의 열매가 나타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돌로 치는 사람일지라도 믿음의 열매인 사랑으로 용서한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성품이므로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경건하다. 무엇보다도 가장 아름다운 마음의 표식이다. 마귀의 자식은 원수를 사랑하기는커녕 죄 없으신 예수님을 아무런 가책도 없이 십자가에 못 박았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그 표식으로 원수 조차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마음껏 뽐내기 바란다. 4.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며 정직한 증거이다. 인간은 자기 존중의 결과로 혹은 자기 만족을 위해 이웃을 사랑하는 척은 할 수 있다. 첫 사람 아담 역시 그 결과 선악과의 죄를 짓게 되었고, 하나님 앞에 부패하게 되었다. 부패한 마음으로는 합당하지 않은 회개, 금식, 기쁨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즉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 모양은 가질 수 있지만,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흉내 낼 수 없는 사랑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사랑을 진정으로 알았기 때문에 자기 만족과 유익을 위해, 세상에 보여지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원수까지도 사랑한다(골3:23-24).
우리는 하나님을 닮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정복하고, 자신의 한계를 하나님의 성품으로 극복하여 용서하고 자비하자. 원수를 사랑하자.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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