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9.8) 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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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tewardship 작성일19-09-15 14:28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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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빌립보서 2장 6-11절
제목 : 무엇을 믿는가?
지난주, 믿음의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해 나눴다. 우리는 죄 값을 치루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러 오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바로 내 죄 때문이라는 죄송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기독교는 인간이 만들어낸 종교가 아니기 때문에 짐작하거나 이해할 수 없으며, 예측할 수 없는 과정과 결과의 연속이다. 즉, 인간의 사고 체계를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는 진리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우리가 믿고 기다려야 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구체적으로 알아보려 한다. 본문은 가장 기독교적인 말씀이다. 5절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라는 뜻으로, 마음을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의지’라고 말한 칼빈의 말에 빗대어 보면 “예수께서 행동으로 옮기신 의지, 예수님의 의지를 너희도 똑같이 가지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님이 의지를 가지고 행하신 일의 증언이다. 예수님이 어떤 의지를 가지고 실천에 옮기셨는데, 그 결과가 9절의 ‘이러므로’에 이어서 나온다. 예수님의 이름이 세상 모든 이름 위에 가장 으뜸가는 이름이 되고, 천사(하늘)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 세계의 모든 것(땅)과 악에 속한 모든 것(땅 아래)이 그 이름에 항복하게 하셨다. 그리고 11절, 앞서 언급한 ‘모든 것’들이 예수님을 경배했다는 뜻이다. 온 세상의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고 항복하여 경배한 결과가 살아계신 하나님 한 분이시라는 것이 예수님을 통하여 확인되었다. 예수님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셨기에 이런 결과를 얻으신 걸까! 여기에서도 우리의 짐작과 예측은 어김없이 빗나간다.
먼저 6절 중 “하나님의 본체”라는 말씀은 이 땅에서 하나님으로 추앙받은 우상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신 하나님 자신이라는 뜻이다.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이 말씀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행동은 물론이고 마음에서조차 어떤 가치, 의미, 염두도 두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이어지는 7절에서 “자기를 비웠다”는 말씀은 6절과 같은 맥락인데, 그냥 비워서 버린 것이 아니라 탈탈 털어서 쏟아 버렸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서의 가치보다 하나님의 뜻을 채운 결과, 낮추고 낮추어 인간의 모양으로 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8절은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 말씀은 ‘십자가에 죽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에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는 뜻이다. 누구나 죽기까지 복종하겠노라고 기도할 수는 있지만 정작 하나님께서 실행에 옮기라고 하시면 그대로 행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만 복종하지 않고, 인간의 염원에도 순응하셨다(막 10:45). 예수님의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 진정한 가치는 하나님께 뿐만 아니라 인간의 바람에도 응해주셨다는 사실이다
무엇을 믿는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수 있는 마음에 의미를 두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존중하신 예수님을 믿는다. 어떤 반대 급부를 바라는 비움이 아니라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도구로 쓰임 받기 위해 비우신 예수님을 믿는다. 오로지 하나님의 의지만을 위해 자신의 의지를 꺾고, 더 나아가 하찮은 인간의 요구에도 응하신, 찬양할 수밖에 없는 예수님을 믿는다. 서두에서도 말했듯, 기독교는 진리다. 인간이 만든 종요가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그 과정과 결과를 짐작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말씀이 이해도 납득도 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인정은 해야 한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삶과 죽음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살아날 수 있는 길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기독교이고, 예수님이 다시 오신 날은 우리가 어느 편에 설지를 선택하는 날이 아니라 선택한 길을 심판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갈등과 의문은 어떻게 해결 받을 수 있나? 이 세상에서 새 생명을 얻는 것 외에 어떤 유익도 기대하면 안 될까? 답은 아까 보았던 5절 말씀에 있다. 예수님이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셨던 의지를 가지자. 자기를 버리고 비워 하나님의 뜻만을 채우려던 의지, 그 뜻을 위해 자신의 권세를 포기한 의지, 예수님 자신의 생명조차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루신 의지를.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이러므로” 하나님이 예수님께 베푼 모든 것을 우리에게도 더하실 것이다. 그래서 “모든 입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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