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06월 06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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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집사 작성일21-06-13 12:1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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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4장13절-5장1절  ‘내가 너를 쓰리라!’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40년의 세월을 보냈다.

인간이 하루 12시간을 걸었을 때 50km를 걸을 수 있다고 하니 약 보름이면 갈 수 있는 길을

40년이란 세월이 걸려 들어갔던 것이다...(비행거리 613, 약650km).

이스라엘이 애굽을 탈출한 목적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 긴 세월을 인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과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들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다면 안타깝게도 종교를 잘 못 선택한 것이라고 말한다. (내 삶에 조력자이신 예수님??)

왜냐하면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조력자가 되어주시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요8:32”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주님이 자신을 믿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예수를 믿는 것은 진리를 알기 위해서이다.

여러분 이스라엘이 애굽을 탈출한 것은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자유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나라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세상에서의 지긋지긋한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참 자유를 소망하게 하고,

결국은 참 자유를 얻게 하는 종교이다.->영적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하나님만을 섬기며

하나님 나라의 자유를 누리는 종교이다.

본문 13절에서 바울은 ‘같은 믿음’에 대해 말한다.

‘예수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이, 우리도 살리실 것을 믿는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여러분 ‘성령’으로 비롯된 믿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령으로 비롯된 믿음과 완벽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똑 같은 믿음이 또 하나 있다. 그 ‘믿음’은 바로 ‘지적 동의에 의한 믿음’이라는 것이다.

‘지적 동의’란.. 자신의 이성이 납득하고 이해해서 받아들인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교육에 의해서도

이 믿음은 생길 수 있다.) 중요하고 무서운 것은 ‘지적 동의에 의한 믿음’ 역시 참 믿음과 모양이

똑 같을 수 있다. 헌신과 봉사,예배와 감사, 그리고 신앙고백.구원의 확신까지도 가지고 있다.

(참 믿음보다 구원의 확신이 오히려 더 강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구원의 확신을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이 믿음은 ‘신념’으로 믿음의 길을 가게 된다.(신념이란 자기 확신을 말하는 것)

‘참 믿음’은 신실한 모습을 보이며 점차 유연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갖는데 반해 ‘신념’ 즉 ‘자기 확신’은

강화된다 그래서 강직하게 된다.(마치 율법주의자와 같은 모습)이 믿음의 소유자는 ‘권면’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 외의 것에는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적 동의에 의한 믿음은

성령의 열매가 있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죽기까지 순종에 한계를 드러내고,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

참 믿음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사람들이다.(고후4:15)

16절 말씀을 읽자. 참 믿음의 사람들은‘거듭나기’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이 된다.

자기 자신을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아 죽기를 원하고, 주님의 부활의 능력으로 자기 자신의 속 사람이

살아나기를 원하게 되는 것..17절-18절 읽자. 참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소망에 만족한다.

현실이 아무리 어둡고 부정적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소망으로 품기 때문에

‘꿈 꾸는 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5:1절을 읽자.사랑하는 여러분 참 그리스도인에게는

또 다른 현실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지금도, 언제라도 보장되어있는 하늘에 있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그래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얼마 전, 우리 교회를 사모하고, 나에게 상담을 받는 어느 집사님의 고백을 들었다.

현실적으로는 전혀 평안이 있을 수 없는데, 조급하고, 불안하고, 앞이 캄캄해서 두려워야 하는데

모든 것에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믿어지기 시작하면서 ‘이상하리 만치 평안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만 고백된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잘 나갔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자신이 어려워지자 자신을 우습게 보는 주위 사람들에게 예전과 같지 않게

너그럽고 불쌍한 마음이 드는 자신에게 놀라겠다’는 고백을 했다. 그 고백을 들을 때 내게

성령 하나님의 작은 음성이 들리는 듯 했다. ‘아버지 하나님이 이 집사를 쓰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참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소망이 있기에 승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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