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10월 04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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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효정 작성일20-10-29 10:29 댓글2건관련링크
본문
마가복음 8장 31절-38절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
본문은 3년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보낸 예수님과 제자의 대화로, 주님이 오신 메시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당하셔야 할 일에 대해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31절에 많은 메시지를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놀라운 것은 32절에 기록된 베드로의 반응이다. 여기에서 “항변”이란 ‘에피티만’으로, 마가복음에서 여러번 사용되는데(막1:25, 4:39, 9:25), 책망하실 때 주님이 사용하신 단어이다. 즉 원문의 단어로 보면 베드로가 주님께 아주 화를 내며 분풀이 하듯 책임을 물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누구인가? 예수님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는 대답을 하지 않았는가(29절). 그런 베드로가 33절에서는 예수님께 야단을 맞았다. 베드로가 이토록 예수님에 대해 분을 품고 책임을 물을 정도로 화를 낸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님과 베드로가 생각하는 목적 및 방법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메시아라는 목적은 같았겠지만, 그 구원의 의미와 대상, 방법, 결과는 달랐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범죄한 인간의 구원을 위한 메시아였고 그래서 십자가라는 죽음의 방법을 통해 부활의 승리를 이루셔야 했다. 반면 베드로는 예수님을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독립하여 구원할 메시아로 여겼다. 또한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독립된 이스라엘에서 그들의 출세를 보장해줄 왕으로서 메시아를 원했다.
과연 베드로가 고백한 ‘그리스도’가 주님이 진정으로 바라시는 ‘그리스도’의 고백이었을까? 우리는
항상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우리가 하는 ‘주는 그리스도십니다’라는 예수님에 대한 고백이 사실 귀신들도 (어찌 보면 우리보다 더) 정확하게 알고 하는 고백이라는 사실을 말이다(막3:11, 5:7). 주님에 대한 지식과 고백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
주님에 대한 신앙고백과 지식으로 자신은 충만하다, 충분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본문을 통해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신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고백한다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원한다면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져야 한다(막8:34).
내가 져야하는 십자가의 의미는 1.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내가 행하는 희생과 헌신, 이것들
때문에 당할 수 밖에 없는 고난을 말한다. 그 길이 가시밭길, 자갈길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가는 것이 자기 십자가이다. 2.주님의 복음을 지키기 위해
받는 고난을 말한다(막1:14-15).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는
위기 의식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따르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이를 위해서는 어떤 고난도 감내해야 한다. 3.가치를 하나님 안에서 발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십자가를 지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믿고 인간의 가치가 아닌 진정한 가치를 하나님 안에서 발견하라는 뜻이다. 주님의
십자가는 아담과 하와가 지은 반역죄를 도말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순종하신 것임을 우리가 알고 있다. 또한
십자가의 순종을 보여주시기 위해 어떤 핑계과 불평도 하지 않으셨다. 십자가를 지기로 작정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34절). 앞서가며 보여주신 모습을
보고 따라오라는 뜻이다.
자기 부인이란?
하나님 앞에서는 나라는 스스로의 가치를 포기하고 내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가능성, 내가
할 수 있다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하나님 앞에서는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사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보다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가 간단하다. 주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 내게 불이익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감수하고라도 주님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십자가이다. 지난
주의 말씀과 연견한다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따르라고 하신 말씀을 성령이 우리에게 생각나게 하시고 가르치시는대로 따라가는 것을 말한다. 특히 35절은 주님의 말씀 마디마디가 진정한 진리이다. 구원의 주체가 자신이 아니라 주님께 있으며, 우리에게는 구원을 이루기
위한 어떤 능력이나 근거도 없으며,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오직 주님을 따르는 길 밖에는 없다.
우리의 생명은 언제나 풍전등화와 같은 처지에 있다. 다만 그것을 느끼고 보고 실감하지 못해 위기 의식 또한 갖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때이다. 그래야 우리가 지금 당당할 수 있다. 그래야 우리가 내일도 당당할 수 있다. 지금도 당당하고 내일도 당당해야 주님이 오셨을 때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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