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08월 23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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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효정 작성일20-09-01 01:20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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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4장1절-8절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야곱은 형 에서와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가져간 것으로도 이미 대단하다 할 수 있지만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사람이라는 뜻의 이름, ‘이스라엘’을 얻었기에 아주 특별한 사람이다. 이스라엘은 후에 한 민족의 이름으로서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자부심의 상징까지 된다. 야곱으로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 광야 생활과 가나안, 다윗과 솔로몬,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분립을 거쳐 패망과 포로 생활에 이르기까지 흥망성쇠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은 항상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경고, 말씀하시며 함께 하셨다. 그런 하나님이 말라기 선지자부터 예수님의 활동 전까지
약 400여년 간 침묵하셨는데 이를 중간기, 침묵기라고 한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이스라엘은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지켜 행하려 했고, 그 기준에 따라 많은 분파가 생겨났다. 본문은 이때의 분파들이 읽고 해석하려던 말씀 중의 하나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된 모세가 마지막임을 알고 이스라엘에게 한 작별과 당부의 말 중 일부이다.
본문의 ‘큰 나라’라는 말은 당시의 이스라엘을 생각하면 매우 의아한 단어이다.
큰 나라, 큰 민족이라고 하려면 인구수, 힘과 부 등 갖춰야 할 것들이 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은 하찮은 천민 계급을
통칭하는 ‘히브리인’이라고 불렸다. 먼저 ‘큰 나라’의 반대 개념일 수 있는 ‘작은 나라’가 무엇일지 생각해보자. ‘나라’는 성경적으로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공동체,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인 공동체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나라’는 하나님을 믿되, 믿음 가운데 무언가 부족한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바리새파로 예를 들어보면, 그들은 회개하고 율법을 잘 지키며 개인이 성별(거룩하게 구별)하여 경건의 생활을 유지하면 하나님 나라가 온다는 ‘성별운동’이 주된 교리였다.
음식을 가리고,부정한 일을 피하고, 십일조를 열심히 하는 등 자기 한 몸만 거룩하고 경건하게 가꾸는 일에만 몰두했다. 누가 더 율법을 잘 지키고 경건한 생활을 잘 하는지 마치 경쟁하듯 했는데, 신앙인으로 옳은 것 같아 보여도 모든 것이 자기 중심적이고 자신만을 내세웠으며 율법의 참 뜻은 헤아리지 않고 문자적인 해석과 기계적인 순종 뿐이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삶으로 보여 주셨던 모습에 극히 소극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작은 나라이다.
반대로 ‘큰 나라’는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공동체를 뜻한다(5절).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는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는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의 영적 엑기스는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하시는 사랑과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하는 사랑, 하나님께 배운 사랑을 이웃에게 실천하며 또한 사람들의 입으로 인정하게 하는 것이다(6절). 이것을 지켜 행하는 것이 곧 지혜,지식이다. 그리고 ‘큰 나라’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공동체이다(7절).
우리의 간절함으로 이뤄지는 하나님의 임재는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며, 하나님만을 인정하고 세상에서 하나님으로 초점이 옮겨지는 변화가 나타난다. 또한 공의가 실천되는 공동체가 ‘큰 나라’이다(8절). 하나님은 정직하시다. 상벌의 원칙을 세우시는 기준이 정직이다. 어떤 행동에 있어서 상 또는 벌을 주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약속이자 기준이며, 이것에는 일관성이 있어서 전혀 변함이 없다. 즉 사악한 자에게 벌하시고 의로운 자에게 보상하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공동체에 드러나야 한다.
‘큰 나라’는 언제나 하나님과 이웃을 인정하고, 모두가 하나님만을 인정하는 변화가 나타나며, 하나님의 공의가 선포되는 공동체이다. 수많은 크고 작은 교회들이 있다. 하지만 교회의 규모보다도 중요한 것은 큰 나라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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