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6월 26일 설교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2-07-11 13:53 댓글0건

본문

마태복음 99-13절 

교회는 이런 곳이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절대 경건을 요구했다

그래서 그들의 죄 인식을 삶의 여러부분에서 찾으려 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질병이었다

유대인들은 사람의 모든 질병은 그들이 지은 죄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지은 또는 조상이 지은(선천적)죄의 결과라는 것이다

본문의 전체적인 쟁점은 하나님의 사람이 죄인과의 식사가 가능한가에 대한 것이다

예수님이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고 마태의 집에서 식사를 하시려 할 때 아마도 마태의 친구들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불러 함께 식사를 하려 한 것 같다

그런데 성경에서 바리세인들은 이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세리들은 1)이방인과 상시적으로 접촉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이미 불결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2)그들은 안식일에도 일을 했기 때문에 안식일을 범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죄인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죄인들과 예수님이 함께 식사를 했던 것이다

식사 역시 유대인들은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식사를 함께 하는 사람들은 동류(한솥밥 먹는 사이, 우리도 식구라고 하지 않은가

즉 자신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역할을 하는 것

이 논쟁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는 과연 예수님이 죄인을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마태는 이 사건 직전에 예수님이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사건을 기록한다.(91-8

여기서 중풍병을 고친다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로부터 받은 죄의 결과인 질병을 고침으로써 예수님의 신적권위 즉 중풍병이란 죄는 하나님께 속해있다는 것

즉 하나님의 권한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죄를 사했다고(고침을 받은 것.)

선포하시고 병고침을 받은 것은 하나님께만 속한 하나님 만의 권한을 예수님이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자 본문으로 돌아가자 그들의 입장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성 모독을 하는 것이다.

(아버지라고 부르는 등 특히 죄사함에 대한 선포

그래서 예수님을 참소하려는 기회와 증거를 노리던 바리새인들에게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전혀 뜻밖의 대답 아니 허를 찌르는 대답이다

12절의 말씀이다. 13절의 말씀을 한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질병이 있는 환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이 죄인들에게 

그리고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사람들에게는 죄를 사하여 주고 감싸주고 인정해 주고 함께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회의 기능은 회복이다. 영적, 육적 회복을 이루는 곳이 교회이다

교회는 상처받은 영혼들이 회복을 하는 곳이다

성도들은 교회에서 너무 거룩한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세상에서 어떻게 살고 있던 교회에 들어오면 경건한 모습을 보이려 노력한다

교회에 들어오면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에 급급하다

그리고 교회에서 가식된 모습만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이 모습이 반대가 되어야 한다

교회에서는 헤이해져 있는 모습을 보여줘도 된다. 교회에서는 흩어져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줘도 된다

교회에서는 거룩한 모습이 아니라 죄 된 모습 그대로 가지고 있어도 된다

교회에서는 세상에서 상처받은 상처 그대로 들어와도 되는 것이다

교회에 오면서 세상의 상처를 치료하고 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환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이 우리 같은 죄인에게는 언제나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실 예수님의 능력이 교회에 있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세상에는 없는 바리새인들이 오히려 교회 안에 많이 있기 때문이다.

(목사가 먼저 바리새인이 되고.) 

바리새인들이 로마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유대인에게 있었듯이 오히려 교회에 바리새인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기 자신을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의사가 필요치 않다.

자기 자신이 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필요치 않다

그것이 자기 자신을 속이는 착각이라 할지라도 그런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필요치 않다

교회에서는 집에 온 것 같은, 안식처에 온 것 같은 평안함을 느끼게 하자

1)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용납하여야 한다.(어떤 상처와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2) 서로 다름을 인정하여야 한다.(다 같이 주님의 사랑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모양과 쓰임은 다르지만

3) 서로가 부족함을 인정해야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아멘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아멘교회    담임목사명 : 송영춘    대표번호: 031-548-0175

교회주소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57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