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0월 6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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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10-28 10:40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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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0장13절-21절
‘진리 3’
신앙을 갖는다는 것을 여러가지로 표현하고 정의 할 수 있겠으나..한 개인에게 관점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나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던 것에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나를 바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생의 본질을 알게 되었다는 것.. (이 때 가장 먼저 발견하는 것이 스스로가 죄인이라는 사실 깨닫는 것,
어느 누구도 아닌 자기자신이 긍휼의 대상이라는 사실(즉 비참하고 가여운 처지에 놓여있다는 사실..
그래서 회개의 눈물은 죄송함도 있지만 자기자신이 얼마나 불쌍한 존재인지를 알게 되는 객관화의 눈물이다.)알게 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것과 나의 것을 분별하는 눈이 생긴다…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구분하는 눈이 생긴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이 하실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 반대로 내가 하면 안되는 일)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하는 주제는 바울에게 있어서 가장 큰 부담이다.
그런데 바울이 내린 결론을 우리는 알 고 있다.
이스라엘이 지금은 버려진 것 같이 생각할 수 있으나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게 되면 나중의 이스라엘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교훈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불신앙마저도 주관하시고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 안에 놓으셨기 때문이다.
(‘선악과를 왜 심으셨나?’의 답과 같다.) 구원을 받으려면 그리스도를 불러야 한다.
부르려면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믿으려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들으려면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가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선택 받아 보냄을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스라엘의 불신앙이 이 5가지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게도 이 5가지 구원을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18절)
핵심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이스라엘에게 전파되었고 이스라엘은 그것을 들었으므로 자신들의 불신앙에 대해 분명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19절-20절) 지금이라도 거부했던 복음 진리에 눈을 떠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이방인 구원이 즉흥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있다는 것)바울은 21절에 결과를 다시 전한다.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에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의 대다수는 그들이 들었던 예언과 성취 그리고 복음을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울이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다시 보자.(11:15-16)
->이스라엘의 불신앙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막지 못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의지와 불신앙을 넘어서시는 절대적인 주권자이심을 바울은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말하면서도 10:21”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여기서는 하나님이 예언자나 전도자들을 통해 손을 들어 부르시고 초대하고 구애하는 모습이다.
너무나 역설적이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하나님의 구애 사이의 역설,, 어떻게 보면 모순으로도 보일 수 있는 바울의 말…
오늘 본문에서의 이 격차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이렇게 설명하자.
1)복음이 이땅에 들어오기 전에 복음을 듣지 못하고 예수를 알지 못하고 죽은 조상들의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 질 것인가??
그것을 하나님이 하실 일이다. 하나님의 영역이다. 단지 우리가 할 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기대하는 것이다.
2)어린 아이의 죽음을 어떻게 할 것인가??? -> 역시 1)과 답은 같다.
3)신앙인들에게 자신이 만난 하나님에 대해 애기 해보라면,,같은 하나님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맞춰서 하나님이 만나주셨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자기가 만난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신 것을 알겠는가??
그래서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본 회퍼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다면 이미 그는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의 일을 해석하려 하지 말자. 그래서 믿음이 먼저인 것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것은 ‘하나님은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으로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의지대로 하실 수 있는 절대 주권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단지 ‘하나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드리는 삶, 도구, 순종… 절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이 복 있는 사람이고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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